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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비성경적인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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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3-06 16:34 조회4,5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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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제84회 총회, "사순절 금지" 결의했다.

 

해마다 찾아오는 사순절, 과연 지켜야 하는지, 목회자들은 고민이다.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가 "사순절 금지" 결의를 한지 올해로 19년째라는 사실을 아는 목회자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 이같은 총회 결의가 있었는지도 모른 채 총회 산하 여러 목회자들이 사순절을 지키면서 총회 결의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교단 정치권 혹은 교단의 지도급에 있는 인사들조차도 무분별하게 사순절 프로그램을 통해 목회의 흥행(?)을 돋구는 추세다. 해마다 개혁신학 라인에 선 교수, 그 중에 이승구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사순절 금지에 대한 글을 공개하지만 총신대에서는 어떤 교수가 그런 글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개혁신학을 100년간 지향해 온 총신과 총회가 교권 다툼에 열을 올리면서도 그런 중대한 신학적 과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하다. 총회 신학부에서라도 그런 입장이나 논고를 발표해 주기를 기대하지만 캄캄 무소식이다. 이에 크리스천포커스는 예장합동 총회 산하 전국교회와 성도들이 제84회 총회에서 금지 결의된 사순절에 대해 간략한 신학적, 역사적 고찰을 보도하여 총회가 지향해 온 개혁신학을 견고히 세워가는데 기여하려고 한다. 아래 고찰은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前 총신대 대학원장 서철원 박사의 지도 하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개혁신학 파수를 위해 다양한 강의와 논단 및 신학 소고로 활동하면서 광주 주님의교회 담임으로 섬기고 있는 고경태 목사(Ph.D., 조직신학)의 기고문을 보도한다. - 편집자 주 - 사순절 기간에 드러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영적 훈련이라는 사순절 준수 여부에 있다. 사순절은 로마 카톨릭(천주교)으로 가는 빗장을 하나 푸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합동 총회는 수 년전 총회 중에 ‘천주교’에 대해서 ‘이단’이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정작 천주교에서 제정했고, 종교개혁으로 거부한 프로그램인 천주교의 ‘사순절’ 행사 기간이 되면 개신교회들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순절이 어떤 영적 유익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슬그머니 사순절 기간에 특별 행사를 도입한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사순절은 경건에 유익을 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경건은 프로그램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천주교와 장로교가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프로그램을 준수한다는 상상은 유쾌하지 않다. 사순절을 사모하는 것은 천주교를 사모하는 것의 방증이 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오순절주의에서 천주교인 하는 ‘방언’ 현상을 동일하다고 평가한 것과 유사할 것이다. 천주교와 동일하게 사순절을 지키면 동일한 수준이 될 것이다. 성경에도 없고 고대교회에서 시행하지 않은 사순절, 아무리 내용을 바꾼다고 해도 천주교 프레임이 주는 위력을 바꿀 수가 없다. 그런 하확고한 입장으로 인해 합동 총회가 일찍기 총회 결의로 사순절을 행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사순절’을 지키면 교회에 어떤 유익이 있을까? 왜 사순절을 지키지 않아야 하는가? 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첫째, 사순절은 무엇인가? ‘사순절(四旬節)’, ‘Lent’는 본래 Anglo Saxon어로 ‘spring(봄)’이란 말이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한 것이 3일이지만, 시간은 40시간이 되지 않는다. 고대 교회는 ‘40시간의 신비’를 묵상했는데,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731년 샤를마뉴(Charlemagne) 시대에 40일로 정착했다고 한다. 16세기 칼빈은 헛된 사변(idle speculation)을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20세기 칼 바르트는 ‘헛된 사변’을 정통주의 신학으로 규정했다.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종려주일과 함께 고난주간’으로 한 주간을 묵상하는 과정을 지냈는데, 언제부터가 ‘사순절’로 대치하고 있다. 서방교회가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오면서 신비 묵상을 긴 날짜를 제정해서 종교심을 과시하려고 한 것인데, 어떤 날짜를 준수하여 외적으로 믿음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신비를 묵상하는 것에서 종교심(자기 믿음)을 과시하는 형태로 왜곡한 것이다. ‘40’이란 숫자를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40’이란 숫자에 열광한 적도 있다. ‘40’이란 숫자 배열을 해서 묵상하려한다면, 게마트리아(gematria)를 공부하라. 한국 철학에도 숫자 놀이는 충분히 많고 흥미롭고 신비롭다. 수학의 신비는 신비주의 원형인 피타고라스가 제시했다. ‘수학과 신비주의’가 얼마나 잘 맞는 짝꿍인지 알 수 있다. 사유(思惟, contemplation)은 경건에 유익하지만 헛된 사변(idle speculation)은 인간 종교로 나간다. 사순절에 유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 유익(즐거움과 만족)에 불과하다. 둘째, 사순절은 사육제(謝肉祭, carnival)를 상상하게 한다. 사육제는 사순절에 행할 고행을 위해서 사순절에 벌이는 의식이다. 사순절에 육식(肉食)을 금하기 전에 ‘고기를 폭식’하는 절기이다. 육식을 금지하는 사순절이 오기 전 3-8일 동안 술과 고기를 먹으며 즐기는 축제이다. ‘사육제(카니발)’는 ‘브라질 리우의 카니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Carnival Brazil 2017, 2월 9(금)-13(화)). 브라질의 카니발과 사순절을 연결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8년 사순절은 2월 14일(수)부터 시작했다. 브라질의 카니발을 기독교 축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카니발은 사순절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카니발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까지 진행한 뒤, 사순절을 시작한다. 셋째, 사순절 40일 동안 금식 등 교회 혹은 개인적으로 다양한 영성 훈련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천주교는 사순절을 ‘빠스카(逾越節)’와 연결하는데, ‘빠스카는 유월절’이다. 천주교에서 ‘부활절’은 ‘빠스카의 신비’, ‘빠스카의 축제’가 있는 날이다. 천주교는 ‘빠스카’가 ‘지나간다’는 뜻이기 때문에 ‘과월절(過越節)’이라고 번역했다(peschach, passover, 逾越節, 過越節). 천주교에서 준수하는 '빠스카'의 신비에는, 부활절의 '부활의 신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빠스카의 신비'가 있다. ‘사순절’의 결국이 ‘빠스카의 신비’이다. ‘빠스카 양초’가 영성 훈련의 도구로 등장할지 모른다. 부활절 새벽에 왜 양초를 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순절의 시작 ‘재의 수요일’, 부활절의 시작 ‘빠스카 양초’이다. 경건 훈련을 하는데 기간이나 도구가 필요 없다. 기도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묵주를 돌릴 필요가 없고, 기도 분위기를 위해서 초를 켤 필요도 없다. 경건은 말씀과 기도로 충분하다. 참고로 미국의 할로윈(Halloween, 만성절, 萬聖節, All Saints'Day의 변형)이 우리 문화 속으로 들어왔다. 할로윈(Halloween, 10월 31일)은 All Hallows’ Evening 또는 All Hallow’s Eve의 준말로, ‘만성절 전야(前夜)’라는 뜻이다. 11월 1일은 만성절로, 11월 2일은 ‘위령의 날(All soul's day)’로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이다. 중세 시대 ‘만성절과 위령의 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할로윈데이는 세계적인 축제와 문화로 우리 사회에 들어왔다. 성탄절처럼 그리스도인 아닌 세속 문화로 정착하고 확산되고 있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교회는 항상 개혁해야 한다”는 개혁교회 단독 표어가 아니다. 로마 교회에서도 사용한다. 로마 교회에서 ‘개혁’은 트렌트 회의(Trent, 1545-1564)였다. 우리는 트렌트 회의를 “역(逆, counter)종교개혁”이라고 한다. 개혁된 교회는 개혁하지 못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꾸준히 개혁해야 한다. 개혁된 과제를 다시 돌이키는 것은 로마 교회(천주교)의 개혁에 편승하는 것이다. 믿음의 경주에서 뒤로 물러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잠 26:11, 벧후 2:22). 천주교를 이단으로 배격할 정도인 예장합동 교단이 사순절 준수를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예장통합 총회(제102회)는 인도에서 들어 온 요가를 금지하는 결의했으니 요가가 시행되지 않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교회의 공적 결의일지라도 성경과 부합되지 않은 것은 따르지 않을 수 있다(루터). 그러나 성경에 부합한 총회 결의는 준수해야 한다.

 

고경태 목사/ ​광주 주님의교회(Ph.D.,조직신학) ​ ​ 홍성복 기자 hongsb0691@hanmail.net [출처] 예장합동 제84회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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